'착한 동물'과 함께 한 보테로展
2009. 9. 5.  토.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안에 있는  덕수궁미술관.


이번 전시 주최사 중  하나는  동아일보.
울 병원엔  동아일보가  배달된다. 
으흐흐흐  다기는  신문에 난  보테로 전시 기사를 매일매일  스크랩 했었다.
착한 동물에게도  보여주려고   스크랩을  북~ 찢어  가져갔었쥐.
덕수궁  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안내 책자도 꼼꼼히  살피며  입장~~,했더니
보테로 아쟈~씨가  볼레로를  욜~씸히  추면서  다기를  맞아주셨다(?).

사실은  요로코롬 
째려보고 계셨다.
다른 사람들한텐  사인도 해주셨으면서,
유독  다기를  째리신 이유는  다기가  옆에  다른 남자를  데리고 나타났기  때문. 
푸 하하하!  (보테로 아저씨   질투쟁이~~ )
다기가  보테로 아쟈~씨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아량곳하지 않고  신나게  관람을
시작하자   질투를  잠재우신  아쟈~씨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사실은  저  한송이 꽃 -  양파는  백합과 식물임.- 을  모른다고. 
그래서  질투같은 감정도  없다고.ㅋㅋ



***


여기서부턴  주최측인  동아일보에  소개됐던  작품들과  고미석,곽민영 기자의  소개글,  또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기사들을  함께  올려보겠다. 
( 우리 함께  올려봅시다우~~~웩! ^^)


* 정물
정물
(유화 96x119cm·2000년)

보는 순간 파인애플과 배, 초콜릿 케이크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자연을 상징하는 과일은 전통 정물화에 자주 등장한 소재인데 보테로는 현대의 디저트를 곁들여 신선하게 표현했다. 초콜릿이 녹아내린 느낌이 살아 있는 그림을 보고도 제과점으로 달려가지 않는다면, 정말 의지가 굳은 사람일 터다.
꽃 연작
(캔버스에  유채, 199x161cm, 2006년)

-  일명  삼시세끼.
그림의  분위기가 오른쪽부터  아침,점심,저녁 같아서리. ㅎㅎ

근데  사실  이 그림의 삼원색은   보테로 아쟈~~씨의 나라,  콜롬비아 국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찾아봤다.
으흠...  콜롬비아 국기가  이렇게  생겼구먼 ~~ 

* 고전의 해석
벨라스케스를 따라서
(캔버스에 유채,  205×176cm,  2006년)

원작은
흰 옷의  어린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
- 벨라스케스  (캔버스에 유채, 105x88cm,  1656년경)
얀 반 아이크를  따라서 
( 캔버스에  유채,  205x165cm,  2006년)

원작은
아르놀피니 부부 
-  얀 반  아이크 (나무패널에  유화,  82x60cm, 1434년,  내셔널 갤러리, 런던)

* 라틴의 삶 
춤추는 사람들
(유화 185x122cm·2000년)

바닥에 굴러다니는 병과 담배꽁초로 미루어 이들이 퍽 오래 춤추고 있었음을 알겠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뒷자태로 미루어 춤에 푹 빠져 있는 남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색색의 조명과 장미 무늬의 커튼으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배경을 장식했다.

정열적인 춤은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 문화코드 중 하나다.  라틴댄스에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노예, 유럽 출신의 이민자와 중남미 원주민의 문화가 두루 녹아있다. 보테로는 라틴댄스를 소재로 여러 작품을 그렸다.
카드놀이
(유화 107×136cm 1999년)

두 남자가 실내의 작은 전등 아래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라틴 사람들은 주말 오후나 밤, 휴일에 손님을 초대해 카드놀이를 즐긴다. 화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작가는  바닥의 담배꽁초 등 시각적 장치를 뒀는데, 여기에 살짝 유머를 더했다. 콧수염이 난 남성이 태연한 표정으로 엉덩이 밑에 카드 한 장을 숨기고 있다.
거리
 (캔버스에 유채,  200×139cm, 2000 년)


'거리'를 보면 보테로가 삶의 리얼리티를 직시하는 작가임에 알 수 있다. 팍팍한 민중의 사회적 전기를 풍속화로 압축시킨다. 군부독재 속에서 서로 염탐하고 감시하는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네사람들이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보인다.

 

여긴 사회계층을 대표하는 7명이 나온다. 다 희화적으로 그려졌다. 사회와 종교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경찰과 수녀, 돈과 권력을 휘두르며 으스대는 고위층인사, 이들의 눈초리는 감시자처럼 차갑다. 길 한복판엔 모자(母子)가 지나간다. 반면 위층에서 고객을 기다리는 창녀나 할일 없이 문 앞에 서성이는 남자는 같은 처지인 것 같다.

 

그의 작품 중엔 무고한 시민이 집에서 체포되어 경찰의 곤봉을 맞고 끌려가는 국가폭력에 대한 관한 것도 흔하다. 같은 맥락인지 보테로는 2003년 바그다드교외 '아부그라이브'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포로들을 잔혹하게 가해한 사건에 분노해  그 연작을 발표한다.

잠자는 추기경
 (캔버스에 유채 151×202cm 2004년)
    신학교   @ 오른쪽  아래  작은 그림 
(캔버스에 유채 151×193cm 2004년)


여기서 보면 추기경이나 신학교의 모습은 그렇게 사회의 빛과 소금의 몫을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중남미에도 "가난한 자들의 울음소리가 신의 목소리"라고 말한 카마라 신부나 보프 신부처럼 예언자 전승에 충실한 성직자나 신학자도 있다. 허나 소수일 것 같다. 하여간 작가는 특정교파를 떠나 종교전반에 대해 비판한다.

 

어떤 종교든 제도권권력이 되면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불교도 고려시대에는 귀족화되면서 타락한다. 예수마저도 당시 '회당체제'로 주름을 잡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라는 종교권력집단에 의해 신성 모독죄로 몰려 십자가에 죽지 않았던가. 

자살
 (캔버스에 유채 168×109cm 2006년) 


이 작품은 제목은 무거운데 상황은 오히려 코믹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왜 자살하려는 걸까? 남녀문제인가 돈 문제인가 아니면 정치관련 문제인가. 하긴 우리가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작가는 삶을 사랑하기에 당면한 이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화폭에 그대로 옮긴다.

작가가 여기에 드러내놓기 꺼리는 이런 소재를 다루는 건 단지 그 예방보다는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고, 그 근본적 원인을 찾아 이 세상 사람들이 더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대안을 촉구하는 그런 의도를 담은 것이 아닌가.

 

음악가들
( 캔버스에 유채 182×119cm 2006년)
 춤  @ 왼쪽 아래 작은 그림
 (캔버스에 유채 151×202cm 2002년) 


보테로의 작품에는 춤과 연주자그림이 유난히 많다. 콜롬비아에서는 걷는 것을 배우기 전에 춤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런 것이 삶 그 자체다. 라틴댄스는 전 세계적으로 그 열풍이 대단하다. 그리고 중남미에서 춤이란 다인종국가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사회통합을 이끄는 언어이기에 이를 중시하고 많이 그린 것 같다.

 

이런 여흥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삶에 생기를, 작가에게는 창작에 영감을 줄 것이다. 보테로는 모 외국방송과 인터뷰에서 당신은 왜 볼륨 있고 중량감 넘치는 그림을 일관되게 그렸냐고 묻자, 작가는 일찍 여읜 아버지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동경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바로 그런 삶의 회환을 이런 작품 속에서 녹이고 승화시킨 것이리라.

 -   '음악가들'을  보고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들썩.  어디선가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라틴 음악! ^^) 
'춤'은  보는 내내  어찌나   흐뭇하던지...  다인종, 다민족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어울리는 모습이란.
 
 해변
(유화·118x155cm·2003년)

모래장난을 하는 아이들과 책을 읽거나 공놀이를 즐기는 어른들. 그리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강아지. 그 다양한 움직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남미의 어느 해변에서나 마주칠 법한 즐거운 풍경. 그 속에 피부색이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해 라틴 문화의 혼합적 성격을 엿보게 한다.


*  라틴 사람들
얼굴
( 캔버스에 유채, 203x170cm, 2006년)

페르난도 보테로의 ‘얼굴’은 조그만 눈 코 입이 파묻힐 듯 커다란 얼굴을 가진 소녀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작은 얼굴이 대세라지만 관람객들에게는 가장 인기 높은 작품 중 하나다. 옅게 화장한 얼굴에 귀고리를 하고 흰 칼라를 단 초록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요모조모 뜯어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자매들 
(유화  173X204cm  2006년)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그림이다. 제목과 달리 생김새에서 공통점을 찾기 힘든 다섯 자매. 푸른색 벽을 등지고 선 그들의 머리와 패션 스타일은 모두 제각각이라 한참을 들여다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자매들뿐 아니라 각기 다른 ‘스타일’을 지닌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과 벽에 걸린 액자 속 그림까지 그 섬세한 표현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색채와 복잡한 화면이 놀랄 만큼 잘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 보테로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랐던 메데인의 평범한 삶을 즐겨 그려 온 화가. 고향의 일상에 대한 따스한 그리움을 한 장의 그림으로 감칠맛 나게 버무려냈다.
우는 여인 
(유화 39X33cm·1998년)

피카소의 ‘우는 여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그린 ‘게르니카’의 습작으로 우는 여인 시리즈를 여럿 그렸다. 보테로 작품 속 대부분의 인물은 감정 표현이 생략된 무표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여성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아래를 보고 있는 시선, 아무렇게나 벌어진 입 모양을 통해 슬픈 감정을 가감 없이 내보인다. 섬세하게 표현된 손의 위치, 그리고 검은색으로 단조롭게 표현된 배경도 주인공의 슬픈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여인의 절제되지 않은 슬픈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수마에 사랑하는 이들을 황망히 흘려보낸 이웃들의 슬픔이 겹쳐 가슴이 아려 온다. 
-  다른  그림들보다  유독 작은  이 작품이   가슴엔  제일 크게  다가왔다.
나도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  떠올랐더랬지. 
저  여자가  흘리는 '밥풀'같은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아니,  뜯어줘야 하나?)
소풍
(유화 113x165cm, 2001년)

인물의 개성이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보테로 그림의 특징. 그렇다 해도 소풍 나온 남녀의 표정치곤 매우 심드렁해 보인다. 만남에 대한 설렘이 사라진 오래된 연인일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심리적 거리가 느껴진다. 무심한 이들의 뒤편에 펼쳐진 고산지대는 콜롬비아의 전형적 풍경이다.
남자와 여자
(캔버스에 유채 75×94cm 2001년 )
애인들  @  오른쪽 아래 작은 그림
(캔버스에 유채 153×98cm 2003년 )
 

사랑은 원래 단순하고 자생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 라틴식 육덕사랑은 인간적이고 해학적으로 보인다.

여기 연애하는 모습은 요즘 같은 이해 타산적 사랑이나 불쾌감을 주는 관음증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서구인들이 보이는 죄의식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랑의 본질은 묻는 것인가 아니면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   오른쪽  작은 그림 '애인들'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느낌이  좋았던  작품이다.
왠지  두 사람이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  정말  따뜻하더라.

* 투우 
자화상
(유화 193x130cm·1992년)

투우의 실질적 주역인 마타도르 복장을 하고 이젤 앞에 선 보테로의 자화상이다. 그림과 투우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착과 열정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투우를 광적으로 좋아한 삼촌 덕에 어린 시절부터 투우장을 자주 드나들었다. 열두 살 때 삼촌의 권유로 투우사양성학교에 들어갔고 투우를 배우는 틈틈이 독학으로 그림도 익혔다. 학교 졸업 후 화가의 길을 걷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투우에 대한 사랑은 평생 식지 않았다. 1984년 투우만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이후에도 투우의 다양한 단계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서도 한 섹션을 보테로풍의 환상적인 투우그림으로 꾸몄다.

*  서커스
곡예사
( 캔버스에  유채, 135x100cm, 2008년)
-  아 하하하!   이런  귀엽고  유쾌 발랄한,   재치덩어리  아쟈~씨를 봤나. 보면서 
터졌던 작품.
보테로 아쟈~씨 그림 속  사람답지않게,  웃고 계신다.  밑에 얼굴만 나와있는  저
아쟈~씨. ^^  

*  조각들
앉아있는 여인
 (브론즈, 212×197×192cm, 2002년)

한쪽 팔을  머리에 대고 살짝 허리를 비튼 자세로 먼 곳을 바라보는 여인. 팔뚝도 허벅지도 듬직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름 고혹적이다. 오랫동안 조각에 대한 꿈을 키워온 보테로는 1973년부터 조각을 시작했다. 회화와 마찬가지로 조각도 독학으로 익힌 그는 청동 재질을 잘 살려내 견고함과 동적인 유연성을 표현한다. 그의 인체 조각상은 원초적 정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대부분 누드로 제작됐다. 야외에  전시중인 이 작품은 햇빛이 비칠 때와 빗방울이 떨어질 때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서 있는 다기
'몹쓸 재현'을 해볼까 하다  말았다.
다기,  잘했어. ㅋㅋ
 착한 동물
몹쓸 출현.  
만화 <영심이>의 '안경태'같은  사람을  좋아하긴 하지만  뭐 비주얼까지  똑같을
필요까지야... 푸 헤헤헤~~~
르누아르 도록은  인쇄된  그림의 느낌이  영~ 별로라서 - 르누아르  작품의  그 색감과  질감을  아무리  인쇄술이  발달됐다고 한들  어떻게  따라잡겠어요...-    사고싶은 맘이  안들었는데  보테로 도록은   너무너무  사고 싶게끔  알차게,  잘  나왔더라.
흥분한 다기가  사겠다고  난리쳤더니  착한 동물이 사줬다.
(정말  착한 동물이다. 흐흐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고  즐거운  전시였다.
글구   미술관이 덕수궁 안에 있어  이곳 저곳  구경할 것도,  또  돌아다닐 곳도  많았다.

게다가  덕수궁  입구에서  관광 안내를 해주시는 '언니'는  또  어찌나  친절하신지...
나도  강릉으로 돌아가면  이 언니처럼  말도 조근조근 여성스럽게 하고  모든 외래객들에게  친절해야겠다,생각했는데   이 포스팅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일(?)을  방해하는(?!)외래객들 땜에  짜증이  해운대를  덮친  쓰나미마냥  밀려온다.  ㅡ,.ㅡ;;
-  그래도  웃어야지요 ~~ 흐흐흐

암튼   다기와  착한 동물은  인사동에도  들러  머루주에  파전을 먹으며  저녁을 
대신하고,
무사히  강릉으로  내려왔다.

착한 동물은  다기 덕분에  '미술관에도  다  와 본다'며  감격해하는,  다소  촌스러운(?)  면도  있지만  이번  미술관  기행으로 인해  그림에  관심이 생긴다고 했다.

앞으로    좋은  전시가  있으면   잘  데리고  다녀야겠다. ㅋㅋ    희열다기  
by 다마네기 | 2009/09/21 12:55 | 다기 미술관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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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9/09/28 14:3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9/09/28 16:41
ㅋㅋ '우리말 지킴이' 님~~~

쉽고 간결한 우리말이 있는데 굳이 한자어를 사용할 필욘 없긴해요.
흐흐흐 그래도 습관이란건 '롤러코스터'의 노래 가사처럼 정말 '무서운 거더군'요. 헤헤헤~~~~
Commented at 2009/09/29 00: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9/09/29 13:28
ㅎㅎ 그럴 수도 있지요, 뭐.
사전 찾는 거, 생각보다 되게 잼있는데 - 대충 알고있던 단어의 뜻을 좀더 깊게 알게되고, 또 몰랐던 의미들을 발견하게되는 즐거움이란! - 게으른 다기는 요즘 사전보단 '네이버'한테 더 잘 물어보고 있답니다. ㅡ,.ㅡ;;

네이버도 친절해서 좋긴하지만 그래도 사전을 가까이 해야 하는뎅... 그쵸!
Commented at 2009/09/29 01:1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9/09/29 13:32
와... 그렇군요!
저도 그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었는데... ㅋㅋ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용했을 것 같아요.

그렇담 우리 주변엔 '선생님'이 넘 많은 셈. 호호호~~~
Commented by 이너플라잇 at 2009/10/10 04:22
보테르전...너무 좋아보이는데요...다기님 포스팅을 보니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색감도, 감각도 ...무척 훌륭하고 멋진 예술가같아요...
밥풀데기같은 눈물을 보니, 우리 딸이 내게 혼나서 어쩌다 울 때 쉴새 없이 흘러 나오던 눈물데기랑 똑 닮았네요...얼마나 서럽고 억울하면 그렇게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던 것일까...잘못은 잘못인데도...이 작품을 보는 이 새벽에 한없이 미안하고 애처롭네요.. 그 마음 안아주고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
보테르의 그림들을 보면서 한없이 순해지는 마음...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9/10/10 13:28
ㅋㅋ 정말 즐거운 전시였어요.
지금도 가끔 도록을 펼쳐보는데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 입가엔 즐거운 미소가...

예술가들의 정신과 마음은 어찌그리 순진무구하고 아름다운지 모르겠어요.
보테로 아쟈~씨만 해도 그렇고.
(생활 속의 예술가인 이너님도 그렇고.ㅎㅎ)
Commented at 2009/10/21 23:18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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