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No. 131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에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또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이  시를  참 좋아한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란  싯구도 좋지만,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 란  싯구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모든것은 다  SHOW 아니,  이 싯구때문에. ㅋㅋㅋ) 

이 가을,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들에게  위 시가   '흰 바람벽'이  되어주기를.  
물론  다기에게도.   
-  다기,  요즘 가을을(매년 그렇듯 올해도 공짜로)타는 것 같아요. 흐흐흐

위 시를 읽으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나를  누군가가  위로해 주는  느낌.
옆에서  담담하게,  조용히. 희열다기  

by 다마네기 | 2009/10/06 12:13 | 詩 詩 한 얘기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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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kmade at 2009/10/06 15:53
아니 요즘 너무 뜸하신데..??
사업이 너무 열중하시는게 아니신지. ㅋㅋ..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그리 짐작하고 있습니다.
근데 저싯구는 딱 나랑 아내의 모습과 그대로 매칭되는군요. 어린것이 좀 땡깡질이 심한게 다르긴 합니다만.. (요즘 이유식 안먹겠다고 버럭버럭.. ㅎㅎ)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9/10/07 12:06
히히! 제가 좀 뜸하긴하죠?
게으른 다기가 요즘 더 게을러졌어요.ㅠㅠ
(사업은 늘 고만고만. 푸 하하하~~~~)

하영이, 정말 많이 컸더라구요.
hkmade님은 점점 야위어가는 것같궁...^^
Commented by 이너플라잇 at 2009/10/10 04:12
백석의 시들은, 시골의 추운 공기 속에서 어쩌다 접하게된, 시래기 된장국에서 피어나는 김같은 느낌이...나요...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참 차갑고 슬프고 그런데, 내 손끝에 놓인, 이 사발 속의 국은 너무 따뜻하고, 뜨겁고, 그런...
Commented by 다마네기 at 2009/10/10 13:22
와우! 맞아요. 정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참 차갑고 슬프고 그런데, 내 손끝에 놓인, 이 사발 속의 국은 너무 따뜻하고, 뜨겁고, 그런...' 너무나 정확한 표현인데요.ㅎㅎ

소설가 신경숙 님도 위 시를 참 좋아하신대요.
백석의 시집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걸 좋아하시고, 잠들기 전에 늘 몇 편씩 읽고 주무셨던 나날들이 있었다 하시네요.

백석의 시들은 편하면서도 아릿하고 눈물겹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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